52p. 벽에 등을 기대고 서서 공간을 쳐다보았다. 빛의 산란 같기도 하고 먼지 같기도 한 자잘한 입자들의 운행 너머 나무 선반이 있고 그 선반을 책들이 채우고 있는 풍경이 보였다. 듬성듬성 벽면이 보일 만큼. 왜 그런 백일몽이 떠올랐는지 알 수 없었다. 내려오기 전부터 정모는 의식적으로 책을 멀리하고 있었다. 읽기는커녕 곁에 두지도 않았다. 신경증적인 데가 있었다. 하지만 그 백일몽은 단숨에 정모를 사로잡았다. 136p. 절벽 아래엔 동굴이 하나 있다. 높이는 겨우 앉은키 정도이지만 꽤 깊고 안쪽은 입구보다 넓었다. 턱에 걸터앉으면 꽤 먼 섬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이우는 혼자서도 거기까지 자주 걸어가 싫증이 날 때까지 앉아 있다 돌아오곤 했다. 자잘한 모래와 자갈이 섞인 바닥에 나란히 앉아 젖은 바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