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책

상처 떠나보내기

보건교육사 리창 2023. 9. 5. 23:24

<상처 떠나보내기,   이승욱 지음>

 

단정적인 말투는 갈등을 불러온다. 단정적인 태도 역시 갈등을 일으킨다. 대화의 행간에 여유가 있고, 관계에 공간이 넉넉하다면 부딪혀서 불꽃이 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자녀나 배우자나 친구들을 대하는 자신의 말투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지면 좋겠다. 어떤 상황에 어떻게 의견을 개진하는지, 그리고 그런 태도가 상대에게 어떻게 느껴질지 관찰해보면 좋겠다.

 

자신의 감정을 강요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상대도 좋아해야 한다고 강요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상대의 행동이 마음에 들 때만 받아들이는 것도 유아적 폭력이라 부를 만하다. 자기 기분대로 상대의 행동을 판단한다면, 경계선 성격 성향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자신의 영향력을 팽창시켜 상대의 감정 턱 밑에까지 들이대는 행위다.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배우자들이, 또는 친하다는 명분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지 모른다. 관계는 대체로 이럴 때 불화하고 고통을 겪는다.

 

말할 때나, 감정교류를 하고자 할 때 우리는 관계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가 내게 들어올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그의 감정이 자유롭게 전해질 수 있도록 채근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가 내 기분대로 해주지 않아도 나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을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상대가 내 뜻대로 해주지 않을 때, 사실 우리는 그 사람에게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럴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자기 실망감 때문에 좌절한다. 그래서 좌절감을 느끼게 만든 그 사람을 증오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심리적 기제를 잘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왜 화가 나는지 알지 못한다.

 

이럴 때 나를 가장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남편들의 태도다. 왜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가, 왜 감정을 느끼는 것을 두려워하는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공감하는 것이 왜 그리도 어려운가? 나는 그런 남자들의 마음에 잘 공감하지 못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의 정서기능과 세심함에 우월감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공감능력이 절반의 기능밖에 수행하지 못함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나는 이렇게 공감을 잘하는데, 당신들은 왜 그렇게 공감이 안 되는지 참 공감할 수 없네.’이런 역설 말이다.

 

화를 내는 궁극적인 목적은 화나게 한 이유를 표현하기 위함이다. 많은 사람들이 화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화를 내면 자신이 화난 이유가 전달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화는 불과 같아서 누군가로부터 화가 쏟아지면 감정의 방패를 사용해서 그 화를 방어하기에 급급해진다. 당연히 화를 내는 이유도 그 방어벽에 막혀 전달되지 못한다. 화의 뜨거움만큼 상대의 방어벽도 강력해진다. 그래서 화낸 사람의 좌절도 커지고 방어하는 이의 마음도 단단하게 굳어버린다.

 

- 상처 떠나보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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