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책

이토록 평범한 미래 – 김연수 / 문학동네

보건교육사 리창 2024. 2. 19. 11:58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 문학동네>

 

18p.

사람들은 인생이 괴로움의 바다라고 말하지만, 우리 존재의 기본값은 행복이다. 우리 인생은 행복의 바다다, 이 바다에 파도가 일면 그 모습이 가려진다. 파도는 바다에서 비롯되지만 바다가 아니며, 결국에는 바다를 가린다. 마찬가지로 언어는 현실에서 비롯되지만 현실이 아니며, 결국에는 현실을 가린다. ‘정말 행복하구나라고 말하는 그 순간부터 불안이 시작되는 경험을 한 번쯤 해봤으리라, 행복해서 행복하다고 말했는데 왜 불안해지는가?” ‘행복이라는 말이 실제 행복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대신한 언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언어는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그 뜻이 달라질 수 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이야기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간다. 이야기의 형식은 언어다. 따라서 인간의 정체성 역시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진다. 이렇듯 인간의 정체성은 허상이다. 하지만 이렇게 규정하는 것도 언어이므로 허상은 더욱 강화된다. 말로는 골백번을 더 깨달았어도 우리 인생이 이다지도 괴로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120p.

글쎄. 난 세상은 점점 좋아진다고 생각해. 지금 슬퍼서 우는 사람에게도. 우리는 모든 걸 이야기로 만들 수 있으니까. 이야기 덕분에 만물은 끝없이 진화하고 있어. 하지만 난 비관주의자야. 이상한 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세상을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비관주의가 도움이 돼. 비관적이지 않으면 굳이 그걸 이야기로 남길 필요가 없을 테니까. 이야기로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인생도 바꿀 수 있지 않겠어? 누가 도와주는게 아니야. 이걸 다 우리가 할 수 있어. 우리에게는 충분히 그럴 만한 힘이 있어. 그게 나의 믿음이야. 하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순간은 찾아와. 그것도 자주. 모든 믿음이 시들해지는 순간이 있어. 인간에 대한 신뢰도 접어두고 싶고,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때가. 그럴 때가 바로 어쩔 수 없이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할 순간이지.

 

176p.

맞아요, 어쩌면 전 죽기 싫어서 거기 고행까지 내려갔던 것인지도 몰라요.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나를 알아보고 이보게, 후쿠다 준 아닌가! 고향에는 오랜만이네. 뭐라고? 자살이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라고 말해주기를 바랐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4월이면 늘 사람들로 북적대는 사쿠라조시공원으로 가려고 했겠지요. 그런데, 제게는 그 한사람이 없었습니다. 한 사람만 있으면 충분했는데 말입니다. 대신 노래가 있었던 것이죠.

 

'일상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처 떠나보내기  (0) 2023.09.05
지지 않는다는 말  (0) 2023.09.04
당신. 꽃잎보다 붉던  (0) 2023.09.03
소설가의 일 - 김연수 산문  (0) 2023.09.02
정미경 – 당신의 아주 먼 섬  (1) 2023.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