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삶 – C. S. 루이스 / 두란노>
18p.
인간에게는 누구나 자아를 지키고 더 강화하려는 일차적 충동이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아를 벗어버리고 그 편협성을 바로잡아 외로움을 치유하려는 이차적 충동도 함께 갖고 있다. 바로 사랑, 덕행, 지식 추구, 예술 감상 등을 통해서 우리는 이 일을 한다. 이 과정은 자아의 확장이나 자아의 일시적 소멸로 표현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오래된 역설이다.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76p.
그런데 이 환한 그림자는 책에서 나와 현실 세계 속으로 들어왔으며, 거기에 머물렀고, 모든 평범한 것을 변화시키면서도 그것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평범한 것들이 그 환한 그림자 속으로 끌려드는 것을 보았다. “이 어찌된 일인가”[눅 1:43]. 당시 나는 수치심이 깊었고 지적으로도 대책없이 무지했는데, 그런 내게 이 모든 것이 주어졌다. 요청하거나 동의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날밤 내 상상력은 일종의 세례를 받았다. 나머지 모든 부분이 세례를 받는 데는 당연히 더 오래 걸렸다. Phantastes(판타스테스)라는 책 한 권을 구입했다가 그런 세계에 들어설 줄은 꿈에도 몰랐다.
86p.
단어를 죽이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가장 흔한 것 가운데 하나는 부풀리기다. 우리에게 “아주” 대신 “지독하게”를, “큰” 대신 “엄청난”을, “잔인성” 대신 “가학성”을, “탐탁지 않은” 대신 “상상도 못할”을 쓰도록 가르친 사람들은 모두 단어를 죽였다.
92p.
유능한 언어 전공의라면 문제의 단어에 “정말”이나 “참” 같은 수식어가 기생하기 시작하는 순간, 불치병을 선고할 것이다. “신사”의 의미가 분명하면 아무개는 신사라는 말로 충분하다. 그런데 “정말 신사”, “참신사”, 친정한 의미의 신사“로 말이 불어나기 시작하면 단어의 수명이 거의 다한 것이다.
132p.
아름다움이 책이나 음악 속에 있는 줄 알고 거기에 의지하면 돌아오는 것은 배반이다. 아름다움은 그 속에 있지 않고 이를 통해 올 뿐이다. 결국 책이나 음악을 통해 오는 것은 그리움이다.
172p.
자신만의 문체를 개발하려면 (1) 본인이 하려는 말을 정확히 알라야 하고, (2) 만전을 기하여 정확히 그것만 말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려는 말을 독자가 처음에는 모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가끔 저는 글쓰기란 양 떼를 몰고 길을 가는 것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왼쪽에든 오른쪽에든 문이 열려 있으면 독자는 당연히 아무 문으로나 들어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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